하나님은 사랑이심같이 하나님의교회도 하나님의 사랑의 방법대로 사랑하고 새언약안식일, 새언약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삶의 방법이기에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교회는 새언약안식일, 새언약유월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땅에서 하나님의 삶의 방식대로 사는것이 쉬운 일일까요?
그 답을 찾아가봐요.
시편 137편 1~6절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4.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찐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찌로다
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찐대 내 혀가 내 입 천장에 붙을찌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바벨론에 사로잡혀서 비참한 삶을 살았을까요?
그것은 바벨론이 바로 고향이 아닌 이방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방땅이기에 예루살렘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지 못하고, 예루살렘의 삶의 방식을 부정하는 일이 계속되었지요. 예루살렘에 있을때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안식일 유월절등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것도 당연한거 였는데 이방땅에 오고나니 이 모든 삶의 방식대로 사는것이 어렵게 되었지요.
마치 조선사람이 조선말 쓰고 조선의 방식대로 사는게 당연하지만
이 당연한 일들이 일제치하에 있을때에는 조선말, 조선의 삶의 방식을 다 버려야 하고 일본의 삶의 방식대로 살아야 하는것처럼 말이지요. 조선말, 조선의 삶의 방식을 다 버리고 일본의 삶의 방식대로 살아야 할때는 정말 비참함 그 자체이지 않을까요? 이방땅이 되었기에 비참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의교회가 하나님의 삶의 방식대로 새언약유월절을 지키고, 새언약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거지만 이땅에서 하나님의 삶의방식을 고수하며 새언약유월절, 새언약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어려운 이유입니다.
고향에 있었다면, 하늘나라를 떠나오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삶의 방식대로 사는 것이 자유로웠겠지만 사단이 통치하는 이 땅에 와 있으니 당연히 하나님의 방식대로 사는 것이 쉽지는 않는 것이지요.
그러나 비록 이방땅에서 비참한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이스라엘백성들과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백성들 또한 이방땅에서 삶이 비참할 수 밖에 없고 힘들수밖에 없지만 다니엘처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삶의 방식인 새언약안식일, 새언약유월절을 지킨다면 분명 고향에 돌아가는 즐거움이 있을것입니다.
하나님의교회가 새언약안식일, 새언약유월절을 지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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